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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식

인디 이야기 - 한국 인디밴드 1세대 vol 1. 크라잉넛

 

한국 인디음악의 시작이라 불리는 한국 인디밴드 1세대 - 크라잉넛, 노브레인, 레이지본

 

 

  정확히 언제부터라는 기점은 없을 것이다. 단지 아직도 홍대 인디 밴드들이라고 하면 음악밖에 할 줄 모르는 딴따라들의 집합소라는 인식이 있는 이 땅에서 어떤 이들은 대자본의 후원없이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앨범제작부터 유통까지 완전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알려왔다. 이제 대한민국의 대표 밴드들이 되어버린 인디밴드 크라잉넛, 노브레인, 그리고 레이지본의 이야기다.

(물론 인디밴드 1세대를 논하자고 하면 이들외에도 델리스파이스, 코코어 등 많은 밴드들이 있지만 이들은 다음기회에 알아보자. 무엇보다 펑크라는 생소한 장르를 '조선펑크' 라는 한국적인 맛으로 대중들과 접촉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자주 회자되는 밴드들이기에 이들을 먼저 다뤄보는것이니 오해마시길^^)

 

 

한국 인디밴드 1세대 Vol 1. 크라잉넛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밴드는 누구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꾸준한 밴드는 누구일까? 단연 크라잉넛이다. 수많은 히트곡과 방송활동으로 이제 그들을 더이상 홍대에만 국한된 밴드로 바라보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숱한 클럽 공연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1990년대 홍대 길거리 한복판에서 보여주던 그 정신나간(?)듯한 화끈한 퍼포먼스를 30이 훌쩍넘긴 요즘에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한결같은 모습이 크라잉넛의 최대 장점이고 대중들이 한국 인디 문화에 관심이 있던 없던 크라잉넛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1. 크라잉넛?

 

   크라잉넛은 유치원에서부터 고교까지 함께한 죽마고우 4명이 만든 팀이다. 기타/보컬 박윤식과 베이스 한경록, 드럼과 리드기타에 각각 쌍둥이인 이상혁, 이상민으로 구성된 이팀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홍대 클럽 드럭에서  오디션을 보면서 크라잉넛을 만들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결성을 한국 인디 밴드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이를 알기 위해선 한국에서 인디밴드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럼 정확히 인디밴드는 무엇일까? 인디밴드는 '인디펜던스(Independence)' 라는 말 그대로 거대 기획사가 자본을 대주고 기획, 생산, 유통, 그리고 활동까지 다 관여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힘으로 전 단계를 셀프(self)형식으로 해결하는 독립적인 밴드 형태를 말한다. 이런 형식으로서의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디밴드는 하나의 문화라는 것이다. 밴드가 자체적으로 팀을 만들고 본인들이 레이블을 세우든 자신들과 맞는 레이블에 들어가든 독자적으로 음악을 만들며 이를 라이브로 관객들 앞에서 나누는 방식. 그리고 이로 인해 주위에서 생겨나는 관련 패션, 카피, 정보 공유 등의 시장형성까지. 즉 인디밴드는 단순한 음악만이 아닌 음악의 생산에서부터 관객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이후까지를 총체적으로 설명할수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인디밴드는 '독립성'과 '라이브', 그리고 '무대'와 '관객'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인디밴드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크라잉넛이다. 크라잉넛은 1994년 문을 연 드럭이라는 홍대의 작은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한다. 사실 클럽 드럭은 개장 초기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수없이 많은 밴드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이라기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신촌의 우드스탁과 같은 클럽형 바에서 더 개념을 확장한 바의 성향이 컸다. 클럽 한 켠에서 술을 마시며 밴드들의 라이브를 보는 성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밴드들 수준도 물론 오디션을 다 거친 밴드들이지만 카피곡 수준의 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쩃든 당시 홍대를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라이브 음악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클럽 드럭은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 중에는 크라잉넛도 있었다. 이들은 오디션을 통해 드럭에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1996년도에 홍대에서 열린 스트릿 펑크락쇼가 그것이다. 이 공연은 홍대에 주차장 사거리(지금의 KT&G)에서 열린 야외 기획 공연이다. 이 공연에서 크라잉넛은 지금의 노브레인 보컬 이성우가 있던 갈매기등의 팀과 무대에서 난장판을 벌였다. 이들은 섹스피스톨즈와 너바나의 노래들을 부르며 관객들과 난장판을 만들었다. 이 공연은 타이틀대로 펑크스러운 광란의 현장이 되었고,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크라잉넛은 인지도를 더 넓혀갔다. 그리고 크라잉넛은 1996년도 드럭이 자체제작한 최초의 인디밴드 앨범 Our Nation VOL 1. 에 참여했다. 바 형식으로 시작한 라이브 클럽이 소속 밴드와 공연을 열고 자체 앨범을 제작한 것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는 단연 최고 인기 트랙이었다.

 

  자 필자가 왜 크라잉넛의 초기 바이오그래피를 설명하는데 이렇게 두서없게 한국 인디뮤직의 시작과 연관지어 설명했는가 하면 보시는 바와 같이 크라잉넛은 한국 인디뮤직의 시작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체적인 클럽 오디션으로 소속 밴드가 되어 자체 기획 공연에 출연하여 일약 이름을 알리고, 이에 힘입어 자체 제작한 음반을 자체 유통하고 홍보하여 점차 유명해진 대한민국 인디뮤직계의 산실이 크라잉넛인것이다. 또 무엇보다 이들의 등장을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동시대 같이 활동하고 지금도 영향력이 있는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보다 하나의 문화로써 인디뮤직을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90년대 너바나의 영향으로 국내에도 많이 퍼졌던 얼터너티브 붐이 이유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퍼포먼스와 사운드로 당시 사회에 염증을 느끼던 젊은이들을 크라잉넛은 그들의 음악으로 대변하였다. 또 이를 바탕으로 크라잉넛과 드럭은 펑크 컨셉의 기획공연과 음반을 내면서 홍대인디문화의 비약적 발달이라는 성과를 내었다. 이 영향으로 홍대에는 다양한 라이브 클럽들과 레이블이 생겨나기도 했다.

 

 

 

 

(90년대 활동당시 크라잉넛의 모습)

 

  이 후 이들은 Our Nation 에서 들려주었던 말달리자와 펑크걸등을 수록한 정규 1집 "말 달리자"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한국 인디 음반으로썬 전무후무한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말 달리자"라는 트랙은 단순히 인디음악을 넘어서 한국 음악 역사에 손 꼽힐 곡으로 자리잡았다.

  크라잉넛은 1999년 2집 "서커스매직유랑단"을 발표했다. 당시 IMF로 힘들어진 국내 사정에서 그들은 서글프면서도 분노하는 듯한 곡들로 당시 청춘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서커스매직유랑단"의 자조적이면서도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등과 같은 구절이 눈에 뛴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우리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다같이 죽어버리자는 "다죽자"나 당시 우울한 상황에 늘어나는 투신자살을 여름철 게릴라성 집중호우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표현한 "게릴라성집중호우" 역시 시대상을 적절히 담고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2001년에 3집 "하수연가"를 발매하는데 이때부터는 전작부터 작업을 같이 하던 김인수를 키보드와 아코디언으로 정식 영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이 앨범은 전작들보단 잔잔하지만 크라잉넛만의 정서가 가장 잘 담겨져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말달리자를 잇는 그들의 히트 트랙인 "밤이 깊었네"를 비롯하여 영화 신라의 달밤 OST로 쓰인 "지독한 노래"가 인상적이다.

  크라잉넛은 2002년 YB등과 함께 얼드컵 프로젝트로 "필살 OFFSIDE"를 또 한 번 히트시키고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앨범인 "고물라디오"를 발매했다. 이 앨범 역시 "고물라디오", "퀵 서비스맨" 같이 그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트랙들이 있다.

  그들은 2003년에 김인수를 제외한 네 명이 동시에 입대하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크라잉 넛 군 복무 시절 ㅎㅎㅎ.... 역시 펑크다)

 

  2003년 그들이 입대하고 팬들은 실망했겠지만 그들은 팬들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 입대 직전 했던 콘서트 라이브 실황 음반인 "BEST WILD WILD LIVE" 음반이 그것인데, 24트랙 두 장짜리 앨범이라 팬들에겐 더 없이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제대후 바로 2006년 "OK 목장의 젖소"를 발매하고 투어를 시작했다. "명동콜링"에서 들려주는 여유로운 스카리듬과 Every Breath You Take와 같은 팝적인 요소가 강한 곡도 있고 "마시자"와 같은 크라잉넛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곡도 있다. 또 타이틀 "명동콜링"보다 더 화제가 되고 크라잉넛 라이브 무대에서 빠질 수 없는 "룩셈부르크"는 기발한 곡 구성과 후렴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트랙이다.

  그들은 "안녕고래"와 같은 싱글앨범과 "좋지 아니한가" 와 같은 OST로 팬들과 꾸준히 만나오며 타이틀부터 어두운 6집 앨범 "불편한 파티"를 발매했다. 전 작의 밝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트랙이 사회적으로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들이 젊었을 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직설적인 어법이었다면 이 앨범은 더 많은 풍자와 모순으로써 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와주에도 탑골공원에서 술 먹고 깨 보니 비둘기가 너무 많아 여기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는 "비둘기"라는 곡은 크라잉넛만의 매력과 엉뚱함을 보여준다.

 

ㅎㅎㅎ 읽느라 토했을지도 모르겠다.

 

 

왼쪽부터 1집 말 달리자/ 2집 서커스매직유랑단/3집 하수연가

 

 

왼쪽부터 4집 고물라디오/ 5집 OK목장의 젖소/ 6집 불편한 파티

 

 

2. 맴버별 프로필

 

 

박윤식 vocal/guitar

 

보컬 기타를 담당하고 있으며 곡에 따라서는 한경록과 포지션 체인지를 하여 베이스를 담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1976년 생(38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초동안 외모가 압도적이다. 얼마전 미모의 여성분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한경록 bass

 

진정한 홍대 대통령으로써 공연 중 화끈한 무대매너와 어눌한 말투가 귀여운 멘트, 그리고 그의 눈 웃음은 수많은 여성팬들을 몰고다닌다는 사실...이지만 진짜 사실은 필자를 비롯한 남자팬들이 더 많이 따라다닌다는 ㅎㅎㅎ

"캡틴락"이라고도 불리는 한경록은 1977년 2월 11일생으로 한경록의 생일은 홍대 3절 명절 중 하나인 경록절이기도 하다. 한경록의 생일에는 홍대에서 다양한 뮤지션들이 한경록의 생일을 축하하며 음주가무를 즐기고 클럽을 빌려 공연도 하는 하나의 축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경록절이라는 거룩한 명칭이 붙여졌다.

 

 

이상면 Guitar

 

1976년 3월 6일생으로 무대 아래에서는 눈웃음이 참 인상적인 순해보이는 기타리스트이다. 하지만 무대위만 올라가면 사람이 아주 돌변하여 가장 거친 헤드뱅잉을 하는 기타리스트이기다. 동시에 똑같은 곡이라도 매순간 즉흥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표현하는 애드립 능력이 좋은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이상혁 Drum (사진출처- 크라잉넛 공식 홈페이지)

 

기타리스트 이상면과 쌍둥이로 헤어와 수염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슬하에 루나라는 이쁜 딸이 있는데 6집 불편한 파티의 "루나"라는 곡은 이상혁의 딸을 생각하면 쓴 곡이다.

 

 

 

김인수 Keybord (사진출처-크라잉넛 공식 홈페이지)

 

1974년생으로 가장 맏형이다. 하수연가로 정식 맴버로 활동한 개성파 연주자로써(그 이전부터 크라잉넛과 작업을 하긴 했었다.) 비둘기에서 질러대시는 그 샤우팅은 가히 충격적이다. 개인적으로 앨레베이터에서 우연히 둘이 탔었는데 필자가 굉장히 쫄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가장 인기 많은 캡틴록빼고 다 유부남이라는 사실ㅇㅣ... ㅎㅎ

 

 

 

 

 

3. 최근

 

7집 정규 앨범 발매가 곧 다가올 예정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단독 콘서트도 연다. 관련 이벤트가 진행주이니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가장 핫 이슈는 최근 씨엔블루와 연관된 소송내용이다. 씨엔블루는 모 방소에서 크라이넛의 필살 offside라는 곡을 카피했는데, 사실 말이 카피지 원곡 자체를 그대로 써버렸다. 즉 녹음되어 있는 트랙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낸 것이다. 문제는 이 방송을 담은 DVD가 일본에서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크라잉넛에게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었고 뒤늦게 사실을 안 것이다. 이에 따라 크라잉넛측은 씨엔블루를 고소하였다. 허나 씨엔블루는 자신들도 몰랐던 사실이라며 DVD유통업체를 비난했다. 씨엔블루는 현재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입장이지만 크라잉넛은 강경하다. 인디밴드들의 권리와 존재를 아직까지 가볍게 보는 듯한 이 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서 말이다.

 

어찌하든 크라잉넛은 쉬질 않는다. 올 상반기 발매될 정규 7집과 더불어 수없이 많은 페스티벌에서 그들을 볼 수 있으니 그들과 함께 다 죽어보자!

 

by 서울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