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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식

인디이야기 - 한국 인디밴드 1세대 VOL 2. 노브레인

 

한국 인디음악의 시작이라 불리는 한국 인디밴드 1세대 - 크라잉넛, 노브레인, 레이지본

 

 

  정확히 언제부터라는 기점은 없을 것이다. 단지 아직도 홍대 인디 밴드들이라고 하면 음악밖에 할 줄 모르는 딴따라들의 집합소라는 인식이 있는 이 땅에서 어떤 이들은 대자본의 후원없이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앨범제작부터 유통까지 완전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알려왔다. 이제 대한민국의 대표 밴드들이 되어버린 인디밴드 크라잉넛, 노브레인, 그리고 레이지본의 이야기다.

(물론 인디밴드 1세대를 논하자고 하면 이들외에도 델리스파이스, 코코어 등 많은 밴드들이 있지만 이들은 다음기회에 알아보자. 무엇보다 펑크라는 생소한 장르를 '조선펑크' 라는 한국적인 맛으로 대중들과 접촉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자주 회자되는 밴드들이기에 이들을 먼저 다뤄보는것이니 오해마시길^^)

 

 

한국 인디밴드 1세대 Vol 2. 노브레인

 

 

 

  현재 한국에서 공연/방송 등을 총 망라해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밴드는 단연 노브레인이다. 노브레인은 1996년 단지 음악 하나에 미쳐서 서로를 찾은 4명이 만든 밴드였다. 클럽 드럭에서 세상에 대한 절규를 쏟아내며 젊을을 불태우던 그들은 이제 어느새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또 이러한 세월의 변화동안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그만큼 변해버린 색깔에 떨어져 나간 이들도 있다. 뭐 어떻게 말하건 노브레인이 한국 인디 밴드 역사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과거의 노브레인이든 현재의 노브레인이든이든 차이가 없을 것이다.

 

 

 

1. 노브레인?

Part 1. (1996~2002[기준은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탈퇴임] )

 

  홍대의 클럽 드럭을 중심으로 조금식 라이브 클럽 문화라는 것이 생기고 있을 무렵. 마산 출생 불대갈 이성우(보컬)는 단지 로큰롤이 미치도록 하고 싶어 서울로 상경하여 갈매기라는 팀을 만들고 당시 활동하던 크라잉넛의 무대에도 출연하는 등 활동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이 때 고교부터 같이 활동을 해오던 차승우(기타), 황현성(드럼), 정재형(베이스)은 당시 활동하던 이성우를 보컬로 영입하여 1996년 그 무시무시한 노브레인을 결성한다.

 

 

(노브레인 원년 맴버들. 왼쪽부터 정재형(베이스), 차승우(기타), 이성우(보컬), 황현성(드럼)

 

  이들은 결성과 동시에 곡 작업을 시작하고 활발한 공연으로 순식간에 클럽씬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개성있고 강한 펑크 스타일과 직설적인 무대 멘트 그리고 화끈한 무대매너 등으로 그들은 당시 홍대를 방황하던 청춘들을 바탕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브레인은 결성 당시 영국의 전설적 펑크밴드 섹스피스톨즈(Sex Pistols)애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그들은 2001년 섹스피스톨즈 헌정 앨범으로 전 트랙으로 본인들이 녹음한 'Never Mind The Sex Pistols, Here's the No Brain' 을 발매하기도 했다.

  섹스피스톨즈가 세상에서 가장 화끈한 밴드로 지금까지 명성이 높은 이유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대단히 이론적인 혹은 거창한 비판이 아닌 우울하던 청춘들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대변하는 솔직한 가사와 그에 맞는 노래 같지 않은(?)보컬과 3코드의 단순한 기타 진행, 그리고 퍼포먼스를 초월하여 기행에 가까운 무대매너 때문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음악활동은 당시 우울하던 청춘들의 자화상이었다. 노브레인 역시 세상의 답답함에 어렵게 접근하려 하기 보단 우리 청춘들 모두가 겪고 있는 야망과 허무에 관해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다가갔다. 또 그에 맞는 무자비한 무대매너로 그들은 당시 홍대 클럽씬을 사로잡았다.

 

 

1970년대 활동하던 전설적 펑크 밴드 섹스피스톨즈.

왼쪽부터 시드비셔스(베이스), 스티브 존스(기타), 쟈니 로튼(보컬), 폴 쿡(드럼)

 

 

  이렇게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혀가던 노브레인은 1997년 처음 그들의 곡들이 수록된 앨범을 발매한다. 바로 일본언더 펑크밴드들과 같이 작업을 한 컴필레이션 앨범인 'Here We Stand' 라는 앨범인데, 이 앨범은 크라잉넛과 이지형이 보컬/기타로 있었더 위퍼도 참여했다. 여담으로 이 앨범은 다른 앨범에도 없고 연주한 기록도 찾을 수 없는 '경찰이면 다냐' 라는 트랙이 들어가 있다. 또 초기 한국 언더 펑크밴드들의 시작을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희귀 아이템이다. 아예 거래 매물이 없다. 혹 소유하고 계신분들은 저에게 좀 연락좀 ^^;;

 

  노브레인은 바로 1998년 'Our Nation VOL 2.' 에 참여하여 '바다 사나이'라는 곡을 발표하는데, 이 곡은 가요차트 안에도 드는 등 'Our Nation VOL 1.' 에서 크라잉넛이 이룩한 성과 못지 않은 결과를 내놓았다.

  노브레인은 1998년 그 동안 활동했었던 드럭을 나와서 자체적 레이블인 문화사기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핵심 맴버 차승우의 군입대로 활동을 잠시 중지하고 맴버별로 다른 밴드를 결성하는데 보컬 이성우와 베이스 정재형은 '리얼상놈스' 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차승우가 군대에 간 와중 1999년 노브레인은 싱글앨범 '청춘 98' 을 뮤직비디오와 함께 세상에 알리는데 이 싱글은 1999년 M.NET 영사음악대상 인디 부분을 수상하였다.

  마침내 2000년. 군복무를 끝내고 차승우가 다시 합류함과 동시에 노브레인은 정규 1집 앨범 발매를 위하여 박차를 가한다.(하지만 베이스 정재형이 바로 입대를 해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결성 4년만의 데뷔앨범인 '노(怒)' 를 세상에 공개했는데 이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조선펑크의 완성', '가장 조선펑크 다운 앨범' 이라는 평단과 대중을 아우르는 칭송을 받는다. 이미 익숙한 '바다사나이' 를 비롯하여 '성난젊음', '청춘은 불꽃이어라', '청년폭도맹진가' 등 어느 한 곡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다. 

  노브레인은 앨범 발표와 함께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2001년 정규 2집인 'Viva No Brain' 을 발매하고 국내외를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뜩히 이때는 초창기 노브레인이의 활동 중 가장 '노브레인' 다운 때라고 사람들이 일컫는데 단연 그 이유는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그들의 광기 넘치는 모습때문이었다. 수많은 기행(?)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2001년 후지락페스티벌 무대 위에서 욱일승천기를 찢던 모습이다.

  당시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로 한국과 양국의 감정대립이 심각한 상태에서 노브레인은 일본 후지락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무대위에 섰다. 일본인들이 있는 앞에서 노브레인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개하며 'Fuck Japaness Imperialism' 을 외침과 동시에 욱일승천기를 찢고 애국가를 열창했다.

  사람들이 어찌보면 가장 그리워하는 노브레인의 모습은 지금은 감히 할 수 없는, 진짜 뇌가 없는듯한 두려움 모르던 시절일 것이다.

 

(2001년 후지록페스티벌에서 욱일승천기를 찢는 노브레인)

 

  이렇게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굳혀가며 한국에서 음악 내외적으로 가장 '펑크' 다운 밴드라는 칭호를 받던 그들은 2002년 음악적 견해로 차승우가 탈퇴를 하면서 잠시 표류하게 된다.

  차승우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히트곡들을 만든 장본인으로써 초기 노브레인의 정체성은 차승우가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섹스피스톨즈의 쟈니로튼과 시드비셔스의 조합에 맞먹는 이성우와 차승우의 결별이 팬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갔을 터이다.

 

 

차승우의 기타와 작곡능력은 노브레인의 히트곡들을 연달아 만들어냈으며 보컬 이성우의 표현으로 노브레인은 누구보다도 확고한 색깔을 갖춘 밴드였었다.

 

Part 2.

(2002~현재)

 

  많은 사람들은 차승우가 나간 뒤 노브레인의 행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노브레인은 이성우가 중심이 되어 3집 2003년 'Marry Poppins' 를 발표했는데 이성우 작곡의 'Little Baby' 가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두면서 그간의 기우를 날려버렸다. 허나 앨범 커버부터 확실히 이 전과는 대비되는 모습에 노브레인의 많은 팬들은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노브레인은 달라진 음악적 성향에 따른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2003년 삼청교육대 출신 정민준을 영입한다. 그리고 노브레인은 정민준이 작곡한 '넌 내게 반했어'를 공개했는데 이는 노브레인 역사상 최고 히트곡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곡이 수록된 3.5집 앨범 'Stand Up Again(2004)' 을 정규 4집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노브레인은 '넌 내게 반했어' 의 엄청난 성공으로 수많은 공연과 방송활동을하게 됐다. 더이상 그들은 홍대 앞을 거닐던 펑크탕아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밴드가 된 것었다.

  2005년 노브레인은 정규 4집 'Boys, Be Ambitious' 를 발표하고 '미친 듯 놀자' 등의 트랙들이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정규 4집을 통해 노브레인의 새로운 음악적 정체성은 완성이 되었다. 이는 단연 새로 영입된 기타리스트 정민준의 몫이 크다.

 

 

  차승우가 초기 노브레인의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현재는 단연 정민준의 몫이 크다. 차승우는 스카 리듬을 자주 이용했으며 곡에 따라 다양한 애드립을 선보였다. 또 사운드 자체가 로큰롤 기반에 러프(rough)한 경향이 많았다. 코러스 자체도 멜로디를 부른다기 보단 지른다는 표현에 가까울 정도이다.

  반면에 정민준은 깔끔하고 보다 풍부한 사운드에 애드립보단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타 리프를 많이 사용한다. 기타 애드립을 줄이는 대신에 중독성있는 후렴구로써 코러스를 많이 사용하여 노래가 경쾌해지고 밝은 분위기를 내도록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민준의 능력이 집대성하여 지금의 노브레인이 있게 한 곡이 바로 '넌 내게 반했어' 이다.

 

 

 

  '넌 내게 반했어'의 엄청난 히트로 노브레인은 활동영역을 더욱 넓혀가며 영화계까지 문을 두드렸다. 바로 2006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영화 내내 코믹적인 연기로 감초 역할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에서 꽤나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주된 영화이다 보니 이들이 마음껏 그들의 음악적 역량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했을 터이다.

 

 

영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노브레인

 

 노브레인은 2007년 정규 5집 '그것이 젊을' 발표하고 다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이들은 방송에서 이제 쉽게 볼 수 있는 밴드 중 하나가 되었으며 2008년에는 아이돌 빅뱅의 'Oh my friend' 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가 됐다. 이후 노브레인은 원년 맴버인 베이스 정재형이 탈퇴하고 새로운 맴버로 정우용을 영입하여 지금의 라인업을 완성했다. 이 현재의 라인업으로 그들은 2011년 'High Tension' 을 발매하고 15주년 기념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현재 노브레인. 초창기와 스타일링 부터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왼쪽부터 황현성(드럼), 정민준(기타), 이성우(보컬), 정우용(베이스)

 

  현재의 노브레인을 보고 '변질됐다' 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들은  여전히 홍대 클럽 공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밴드이다. 그리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거만하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관객과의 만남을 꺼리지 않는 밴드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단순히 변질이라고 치부하며 비난하기엔 그들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들과 현재 본인들의 음악과 홍대인디밴드들의 활동을 위하여 하고 있는 매순간이 정말 소중하고 값지다. 분명한것은 예나 지금이나 노브레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 것이다.

 

 

 

2. 맴버별 프로필

 

보컬 이성우

 

1976년 12월 8일 경상남도 마산 출생으로 풍운의 꿈을 않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로클롤 키드이다.

이젠 40을 바라보는 아저씨(?)이지만 여전히 젊은 외모와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활동 초기에 머리를 쌔빨갛게 염색하고 다녀서 불대갈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사실 불대갈이라는 별명이 본명보다 더 유명했었다.

 

 

드럼 황현성

 

 

1978년 6월 20일 생으로 포털사이트에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된 그의 사진을 찾기가 힘들다. 그만큼 똘끼 넘치는 드러머로 무대 위에서도 그의 똘끼는 여지없이 보여진다.

기타리스트를 꿈꿨으나 키가 작아 멋이 없다고 드러머로 전향한 황현성은 이성우와 더불어 유일한 원년맴버이다.

 

 

 

기타 정민준

 

1980년 4월 19일 생으로 보보라는 귀여운 예명을 갖고 있다. 번개무늬를 좋아한다고 하여 목 뒷덜미나 기타 스트랩에도 번개무늬를 새긴게 독특하다. 또 금에 환장한다고 하여 이 안쪽을 금으로 박기도 했다.

정민준은 MBC 토크쇼 '라디오스타'에서 엉뚱하고 어눌한 말투로 크고 작은 웃음을 유발한 바 그의 팬이라면 꼭 찾아보시길

 

 

베이스 정우용

 

1982년 3월 2일 생으로 팀 중 가장 막내이자 가장 늦게 합류한 맴버이다.

그만큼 다른 맴버들에 비해 존재감이 약한게 사실이나 실제 공연에서 보면 가장 간지나는(일단 다리가 무지 김) 맴버이다.

매니저로 활동하다가 맴버로 합류했다는 에피소드도 있고 무언가 문희준을 닮은 인사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3. 최근

 

  노브레인은 가장 바쁜 밴드 중 하나이다. 쉴 새 없이 공연과 방송을 넘나들며 바쁘게 생활하고 있고 올해는 특히 북미 최고의 음악페스티벌인 'SXSW' 에 참여했다. 이미 국내의 '갤럭시 익스프레스', '국카스텐' 등이 출연한 바 있는 이 페스티벌은 올 해 특히 K-POP 을 소재로 국내 아이돌 그룹 'F(X)'등이 참여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노브레인은 K-POP엔 락도 있음을 알리겠다고 장담하며 출국을 했고 그들의 오랜 라이브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무대는 가디언 선정 SXSW 10대 공연에 선정됐다. 역시 ㄷㄷㄷ하다.

 

 

 

몇 가지 비밀들......

 

노브레인은 1996~1997년 세컨드 기타까지 포함해 5인조로 활동한 적이 있다.

초창기 노브레인에는 크라잉넛 드러머 이상혁이 잠깐 활동하기도 했었고

크라잉넛 베이스 한경록도 잠시 연주를 했었고

반대로 이성우는 크라잉넛에서 객원보컬을 하기도 했엇다.

그만큼 드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상당히 친밀했다.

 

by 서울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