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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정보

뮤지션과 관객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공연<도란도란> 서울상회 여러분께 재밌는 공연을 기획하는 팀이 있어서 소개해드릴려고 합니다. 인디 뮤지션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공연을 만드는 은 뮤지션과 관객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공연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뮤지션의 노래를 듣고 생각나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보내주시면, 공연 당일 뮤지션과 함께 사연의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또한 이 과정을 이쁘게 담아서 영상을 만들어 드립니다. (이 영상은 도란도란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 됩니다.) 이번 공연은 인디밴드 남자 중에 상남자 "플랫핏"과 함께 합니다! 혹시 플랫핏의 노래를 듣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보고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도란도란 페이스북(www.facebook.com/doranindie).. 더보기
70년대 후반, 산울림의 등장(김창완,김창익,김창훈) 산울림 왼쪽부터 김창완(기타,보컬) 김창익(드럼), 김창훈(베이스) 아마도 우리는 산울림이라는 밴드가 어떤 밴드이고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자세하게 알고계신 분은 드물거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에는 산울림의 김창완은 그냥 드라마에서 보던 탤런트나 라디오 DJ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일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개인적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의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1975년, 많은 뮤지션들의 활동이 잠잠해지면서 70년대의 음악시장은 암울했었습니다. 그 때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암흑기라고도 불리며, 유신 등 시대적 상황과 대마초 파동이 맞물리면서 신중현-한대수-김민기 등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명맥은 끊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였죠. 우리의 대중음악은 포크.. 더보기
70년대, 범국민 운동과 히피문화 그리고 포크 음악의 물결. 70년대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히피문화라는 새로운 해외문화가 등장 했고, 대표적인 농어촌 현대화 도시개량화사업인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70년대의 대중음악은 보컬그룹에 뒤를 이어 포크싱어들이 나올 때쯤. 기타 못 치면 간첩이라는 말이 퍼지기도 했었다. 그 음악엔 대화가 있었고, 서정이 있었고, 아마추어리즘에 싱어, 송, 라이터라는 3박자를 갖춘 창작기능까지도 구비한 젋은 그룹들이 등장했다. 김민기, 한대수,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투 코리언즈.. 그때 그 시절, 생활양식도 크게 바뀌었고, 외국에서도 장발, 히피문화가 극성일 때 그야말로 태풍급의 포크 바람이 불어닥쳤는데. 듀오나 솔로 가릴 것 없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때였다. 그리고 우리 포크가수들은 단순히 흉내만이 아닌 창작 가요를.. 더보기
60년대, ADD4(에드포)냐. Key boys(키보이스) 냐. 오늘은 그 전 포스팅에도 소개 해드렸지만 60년대 그룹 사운드를 국내에 정착시킨 신중현의 ADD4(에드포)와 더불어 양대산맥으로 불리우는 윤항기의 키보이스(Key boys)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직까지도 60년대의 록그룹의 효시는 에드포냐, 키보이스냐 라는 논쟁이 많지만, 개인적으론 두 팀다 정말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의거, 그리고 5.16군사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60년대는 보릿고개 시절로 젊은이들은 현대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전통에 대한 미련도 없는 우울한 세대였습니다. 노란샤쓰의 사나이로 촉발된 신가요의 붐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대히트로 다시 트로트로 급선회하고 있던 시기, 영국에서는 리버풀 출신의 비틀스가 기타 3대와 드럼만으로‘.. 더보기
한국 재즈 2 저번엔 고인이 되신 재즈 뮤지션들을 다뤄 보았습니다. 오늘은 현재 활동중이신 원로 재즈 뮤지션들을 다루어볼까 합니다. 앞서서 포스팅이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라틴 타악기의 거장 "류복성" 선생님. 재즈 피아노의 전설 "신관웅" 선생님. 재즈의 이론가, 작곡가, 교육자, 프로듀서 "이판근" 선생님. 클라리넷 집념의 거장 "이동기" 선생님 그들과 함께였던 가장 오래 된 재즈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태원의 "올 댓 째즈" 그리고 그들이 만든 재즈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 라틴 타악기의 거장 "류복성" 선생님. 언제나 군복 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르시는 류복성 선생님으로도 유명하다. "왜 항상 군복만 입고 다니세요?" "난 아직 전쟁 중이야... 음악하고" 올해로 재즈인생 56주년을 맞은 드럼 연주자. 그리고.. 더보기
한국 재즈 1 (한국 재즈 1) JAZZ. 어려운 음악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한국 JAZZ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신 재즈 뮤지션들이 있다. 오늘 포스팅은 50~60년대 고인이 되신 재즈 1세대 부터. 아직까지도 활발한 활동의 끈을 놓지 않으신 원로 재즈 뮤지션들을 소개 해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우리나라 재즈1세대 뮤지션 이미 우리 곁을 떠나 고인이 된 몇몇 재즈 뮤지션들. 그 중 "박춘석","이봉조","길옥윤" 등 낯익은 이름이 있는가 하면. "최상용","신지철","엄토미" 등 생소하기 이전에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초창기 재즈뮤지션들... 그들이 재즈와 음악의 열정으로 불태우던 때. 음악으로 사는 삶의 고난함. 인생이 곧 재즈였던 나날들. 이토.. 더보기
60년대, 신중현과 ADD4(에드포) 그리고 엽전들. 50년대 후반. 국내의 음악시장은 그 당시의 사회적 영향을 받아 굉장히 암울했던 시절이였다. 그렇게 힘든 시절인 만큼. 음악은 곧 국민들의 희망이며. 안식처였다. 국민들의 "희노애락 = 음악" 이라는 표현이 적절 할 것 같다. 뭐. 그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안 힘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대부분의 가수들은 미군부대에서 활동을 하며.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며. 흔히들 50년대 후반 "가수"라 하면은 진짜 기막히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가르켜 "가수"라는 칭호와 개념적인 의미를 두었던 시절이였다. 당대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자랑하던 패티김(58년 데뷔) - 이미자(59년 데뷔) - 하춘화(61년데뷔) 로 이어지는 "여성 보컬"의 전성기는 가히 대단했다. 하지만 그 때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보아 한.. 더보기